누구야. 말 했다. 밤 앞에 우뚝 선 처음 보는 그에게. 하지만 듣지 못한 듯 뒤돌지 않는 그 때문에 벽 뒤로 몸을 슬쩍 숨겼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것을 알지 못 하는 걸까.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누구냐니까. 막상 테라스를 바라 보고 서 있는 그는 태평해 보였다. 이 집은 내 집이었지만, 마치 자기 집인 마냥 주머니 안에 손 까지 꽂아 넣은 채 였다. 잠결에 일어나 나도 모르게 향하게 된 거실엔 웬 남자가 밖을 보며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겁 부터 났지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남자는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푸른 달빛 내리는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는 그 때문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귀신이 아닐까.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도둑이야? 질문을 바꿔 다시 한 번 물으니 스윽 뒤를 돈다. 어깨만 ..
생경한 분위기 아래 놓인 두 눈망울이 무섭게 번뜩였다. 누가 먼저 질세라 그 누구도 먼저 시선을 쉽게 내리지 않았다. 백현이 쥐고 있던 머그컵을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 까지도 눈 한 번을 깜짝하지 않자 경수의 목울대가 올라 갔다 내려 가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기류를 눈치 채지 못한 세훈이 헤헤 웃으며 말 했다. "기장 님이 건물 소개해 주시는 게 어때요?" 전 좋습니다, 하고 먼저 순응한 경수를 맡긴 채 뽈뽈 뛰어 가는 세훈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서로를 얼마나 지켜 보았을까... 머릿속엔 수만가지 생각들이 둥둥 떠 다니기 시작 했다. 한창 출근 시각이라 분주한 로비와 달리 상당히 한산한 고층 복도. 밝은 아침 햇살이 눈 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몇년 전 장거리 연애 특성상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서울 중심가의 응급실에 섞인 여러 기계 신호음과 고함, 그리고 의료진들의 다급한 외침. 그 속에서 거세게 호흡을 강요하고 있는 그의 폐 때문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슴에 귀를 대어 본 의사가 쉴 새 없이 덜커덩 거리는 베드 옆으로 쫓아 오던 간호사에게 무어라 지시 하였다. 무의식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산소 호흡기를 꼬옥 붙들고 있어야만 해야할 때, 셀 수 없는 발자국 소리들이 재빠르게 수술실 안으로 사라졌다. 응급 수술을 항시 대기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투입 되면서 부터 호흡은 더 아슬아슬해져만 가고 있었다. 삶의 나락에 서 있는 듯 안개로 가려진 아래로 떨어질까, 말까 고뇌 중인 듯해 보이는 상태 였다. 위태로웠다. 살려야만 했다. 그가 누군지도, 그의 그도 누군질 알았기에 더욱. 마침 인력이 충분할 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공간 속에서 모두가 우두커니 서 숨을 죽이고 중앙에 놓인 침대 모양의 고철로 시선을 모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러 사람들이 동그랗게 중앙을 둘러 싸고 서 있는 형태 였고, 가운데에선 무언가 사람으로 보이는 듯한 생명체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 연구소 중 가장 우두머리인 노인 소장이 안경을 한 번 치며 올리며 조수에게 말 했다. "어떤가." 모니터로 혈압과 뇌파를 지켜 보던 조수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 했다. 연구소의 모든 인물들이 벼르고 벼르던. "끝내 주는 괴물 입니다..." 이 존재를 세상 밖으로 그냥 내보냈다간 생소함이 눈에 띄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확실하지 않다. 마침내 존재의 눈이 완전히 뜨이자 모든 연구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 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