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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기면증

기도 冀圖 2017. 2. 4. 22:12
"팀장 님 신호가 흐려집니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초록색 작은 동그라미. 다급하게 외치는 인호의 입을 순간적으로 틀어 막고는 검지를 입술 위로 슬며시 대었다. 비장한 눈빛 아래 입모양으로 말 했다. 다물어. 그 모습에 인호는 자신이 그의 심기에 대한 무언가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반면 예키지 못한 사고에도 백현은 침착 했다. 놀라운 일도 아니야. 몰래 붙여 놓은 GPS 신호가 흐려지는 것은......

"제기랄."

또 들켜 버린 걸까. 백현이 앞머리를 느리게 쓸어 넘겼다. 카메라 속 그가 너무 밝게 웃고 있는 바람에 열이 뻗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야."
"예, 예?"
"드론 회수 해. 정리 하고 퇴근 해라."

곧 안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든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백현은 자주 이러한 날이 선 모습과 함께 감시나 잠복 하는 일이 잦아졌다.

"백호, 백호. 목표물이 위치 송신기를 박살 냈다. 지시 대기, 계속 감시 하도록."
-알겠습니다.

백현이 주섬주섬 자켓을 챙겨 입자, 인호가 근심걱정이 잔뜩 쌓인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 님은요...?"
"당연히 나도 현장으로 달려 들어야지."

캄캄한 사무실 안에선 모니터 앞에서 벗어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었지만 백현은 앞이 보이긴 하는지 머리칼 까지 나풀 거리고 쿵쾅 거리며 사무실을 잽싸게 뛰쳐 나간다. 참 별난 인간이야...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드론을 회수하기 위해 조종기를 만지작이는 인호는 뒤늦게 느껴지는 피곤함에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 했다.






백도 기면증
/기도 씀






백현이 경수에게 구애의 춤을 추기 시작한 시간은 꽤나 짧았다. 매일 같이 싫다고 하면서 꽃다발을 짓밟아도 좀처럼 철회 되지 않는 백현의 마음을 받아 들인 것이 잘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90년대에나 나올 법한 고전적인 구린 멘트, 집착적인 들이댐이 부담스러운 그 끈임없는 애정공세를 멈추려 승낙 했는데도 변백현의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

'싫어요.'
'나도.'
'네?'
'나도 사랑한다고.'

그는 또 항상 엉뚱했으며 매일 밤 4차원의 공간 속에서 뇌 라도 씻어내고 오는 것 처럼 '긍정'의 신이었다. 직업상 포커페이스나 일상 연기를 해야 할 때에도 위화감 하나 없는 프로 라서 그런 습관이 들어 버린 것일지 몰라도 백현은 무지막지한 해피함을 소유 하고 있는 자 였다. 사실 자존심 우겨 넣고 말 하자면, 어느덧 백현 때문에 웃는 자신을 발견 했기 때문에 그의 1n번 째의 프로포즈를 받아 들인 것이었다. 정말 얘기하기 싫었다. 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으니까. 하지만 하난 증명 해 놓아야 할 것 같아서 꺼내는 거다. 얼토당토 않은 계기이지만...... 우린 결혼 했다. 불과 한달 채도 되지 않았다. 일이 바빠 신혼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 했고.

"촉이 와."
"응? 뭐가 경수야?"

경수가 길을 가다 말고 우뚝 멈추어 섰다. 이어서 찬열이 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려 보지만, 그 무엇도 없었다. 사람도, 담을 타는 고양이도, 달도. 찬열은 경수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왜 이래. 너 직업병이야? 술 마시러 갈래?"

아... 이 자식은 내가 첩보원인 거 알지. 순간 뒷덜미에 스친 한기 때문에 한껏 경직 되어 예민해진 상태 였다. 찬열은 서울 검찰청 제 1수사대에 소속된 검사다. 우리 그룹과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인물이자, 동창이다. 이런 곳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엎드려!"

과격한 경수의 톤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팍 수그린 찬열의 어깨가 있던 허공으로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큰 눈알을 휙휙 돌리는 찬열이 여전히 상황 파악 중이었을 때. 사람이 이 정도의 공포심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폐가 시체 유기 사건으로 현장 방문 할 때 보다 더 극심한 공포 였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부터 검은 무리를 데리고 고함을 치며 달려 오는 선두에 선 한 남자와 종종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높은 담을 넘어 무리에 합류 하기도 했다. 족히 스무명은... 되어 보였다. 저 자식 또 시작이네.

"감히 우리 자기한테 술을 권해~!!!"

경수가 찬열의 앞을 과감하게 가로 막으며 호위 했다. 졸지에 경수 엉덩이가 눈 앞에 안착하게 된 찬열은 결국 시선을 내렸다.



*



"아, 팀장 님 오셨습니까?"
"상황은."
"식당은 남자 분이 계산 하시고, 잠시 걷는 중 입니다."
"뭐?!"

제기랄... 젠틀하군. 백현이 이를 바득바득 갈자 함께 있던 자들이 저 마다의 숙연함을 보였다. 고요히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보이는 영상은, 은밀한 듯 조용하게 따라 붙고 있는 사람 하나가 촬영 중이며 생중계식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원재가 듣기에 대화들은 볼품 없었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만 느리게 흘러가는 지루한 이야기 였다. 별 얘기 아니네요. 하며 말을 붙이려던 참에 바라본 백현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거리고 있었다.

어이쿠...

고개를 훼까닥 돌리며 황급히 운전에 집중 했다. 인적도 드문, 건물 너머에 밝고 휘황찬란한 사람들의 거리와는 다르게 이 길은 한참이나 조용하고 어둠이 가라앉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우거진 숲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촉이 와.

"따흑."

백현이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차량 안 모든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같은 팀원이자 사모님이 되어 버린 경수를 백현의 지시 아래 미행하고 감시한지 어느덧 석달 째.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 했다지만 백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한 걸까?

"내가 느꼈다. 내가 먼저 이상한 거 느꼈다. 것 봐. 우린..."

...... 그러시든지.

생수 뚜껑을 따더니 거침없이 발칵발칵 넘겨 대었다.

-왜 이래. 너 직업병이야? 술 마시러 갈래?

동시에 백현이 무작정 생수병을 내던져 버리곤 차 문을 열고 뛰쳐 나갔다. 얼떨결에 함께 출동하게 된 사람들은 그저 어리버리한 정신을 여매며 백현의 뒤를 좇았다. 백현의 포효가 들렸던 것 같은데 언뜻 '전쟁 선포'라고 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



*



"무슨 짓이야?"
"그야...!"

아니. 백현이 역정을 내려다가 말았다.

"너, 이미 알고 있었잖아."
"뭘. 네가 나 감시 하던 거?"
"... 응."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둘만의 공간 속에 갇힌 낯선 기분이 드는 것은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막상 찬열을 때리기 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옆에 서 있던 경수가 자신을 짐승으로 볼까 싶어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았다. 하지만 내 소유 하나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놓아야 한다는 그것 하나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넌 내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아?"

속이 울렁 거렸다.

"왜 대답 안 해? 계속 하던 감시 못 해서 아쉬워?"
"아니야."

어물쩡 다가가려던 경수의 앞을 찬열이 차단 했다. 순간 찌릿 하고 쏘아진 백현의 눈매가 마치 '사라지고 싶냐'라고 언질하고 있는 듯 했다. 찬열이 말 했다. 조금 전 까지 홀딱 젖은 강아지 처럼 죽상이 되어 보이더니 꼴에 검사라고 뭐라도 하겠다 이건가.

"이상은 폭력 입니다."
"비켜."

찬열은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서서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는 도경수가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거리엔 드문드문 가로등만 있을 뿐 딱히 길이 밝은 것도 아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 거리엔 아직 영업 중인 찻집도 있었고, 그 외 상가들도 있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인도 한 가운데서 이러는 것도 민폐긴 민폐지만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수에 백현은 기가  빨렸다.

"비켜."

이번은 백현이 아니었다. 경수의 한 마디에 옆으로 빗겨준 찬열은 그저 경과를 지켜 보기로 했다.

"내가 왜 결혼한 줄 알아?"

결혼이라는 그 한 마디에 심장이 욱신 거렸다. 그 때의 설렘으로 두근 거리기도, 앞으로 경수가 할 말을 알 것 같기도 해서 그렇다.

"네 그 집착 좀 어떻게 해 보려고. 그래서 했어, 결혼. 근데 지금 까지 달라진 데가 있긴 하니?"

몇걸음 다가온 경수는 눈을 똑바로 쳐다 보고 얘기 했다.

"누누히 말 했잖아.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내가 너 좋아서 받아준 줄 알아? 짜증나, 진심으로!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 저 인력 부터 장비 까지 이러라고 있는 줄 알아? 일이나 똑바로 해."
"집에 가자. 자기야."
"자기야 거리지 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던 백현을 경수가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너무, 바람 같아서... 원래 보이지도 않는 공기 처럼 지나가서 그래서 더 서러웠다. '내가 너 좋아서 받아준 줄 알아?' 음... 그랬구나. 경수는 내가 부담스러웠구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 했다. 경수와 알고 지낸지는 어느덧 1년. 그저 일 하는 모습에 반해서 뽈뽈 거린지 육개월.

"가긴 어딜 가..."

무릎을 굽혔다. 원재가 감기에 걸린다며 모시려다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을 보곤 그만 두었다. 잠시 이렇게 두어도 되겠지.

경수가 짜증이 난다고, 말 한다. 내 앞에서, 그것도 내가. 갓신입이었던 도경수가 떠올랐다. 사무실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귓바퀴를 붉게 물들이며 헤실헤실 웃어서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냐고 묻던 때. 경수는 그 때 이곳에 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좋다고 간결 명료 하게 대답 했다. 묵직하면서도 따스한 목소리와 짙은 눈썹을 시발점으로 뚜렷한 이목구비를 경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첫만남 부터 예정 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들은 이것 뿐이었어. 어려서 부터 시작한 이 일에서 얻은 거라고는 관심이 있음 그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게 해 줄 그런 열쇠가 되어 줄 거라 생각 했다. 눈이 멀었다.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 부터. 나를 사랑해 달라고. 제발 바라봐만 달라고. 나의 방식을 오래 전 부터 싫어 했다는 것을 뼈 저리게 느끼게 되자 몰려 오는 죄책감은 척추가 뒤틀리는 아픔이 들게 했다. 이 모든 게 다 널......

"변백현."

낯익은 음성에 백현이 무릎을 피며 느릿하게 뒤로 돌았다.

짝-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손과 볼의 살부대낌이었다. 이내 백현은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앙 다물자 입술이 찢기는 고통은 더 커져만 갔다. '결혼'이라는 단어 하나가 많은 것을 생각 나게 하는 만큼 그 흐름대로 흘러 갈 것이란 건 여지껏 허망한 생각이었던 걸까.

"너 또 혼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백현이 고개를 스윽 돌리자 경수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며, 불거진 귓바퀴가 한 눈에 보였다.

"왜 다시 왔어. 난 아직 자기한테 우는 거 보이기 싫은데."
"이 찌질이 새끼야... 백날 혼자 드라마 찍고, 소설 써 봐라. 정신 건강만 나빠져."
"걱정해 주는 거야?"
"헛소리 할 힘은 남아 있네..."

다들 귀가 하세요. 박 검사 님도 가세요. 경수의 단호한 어투에 하나 둘 빠져 나갔다. 찬열은 제일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감정을 드러내려 할 수록 지금이 밤인 게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다. 하필 가로등 아래가 아닌 것도 다행인 일인 것 같다. 만일 두 가지 모두 아니라면 홍당무가 된 낯빛을 제일 먼저 들켜 버리고 말 테니까.

"너 바보야?"
"응... 그런가 봐."

살짝 부은 볼을 우물 거리며 말 하는 걸 보니 고개가 저절로 내려갔다. 시, 시발... 귀엽잖... 아...

"난 경수가 너무 좋다. 화 내도 좋고, 짜증 내도 좋고, 웃는 건 백만배 좋은데. 나 때문에 그런 건 조금... 아파."
"......  생각해 보니까 나아진 게 있긴 하더라."
"응? 어떤 거?"
"구린 멘트."
"내 멘트가 구렸어...?"

금새 또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보고는 경수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에 울었던 터라 눈물자국을 타고 불그스름해진 흰자위가 서러움으로 물들어 가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 였다.

"뭘 또 기 죽고 그래. 지금 안 그러면 된 거지..."
"내가 생각해도 진짜 미친놈이었어. 역시 그러면 안 됐지? 이제 안 그러면 되지, 경수야?"

여차 생각해 보니 백현이 가여웠다. 경수가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와 거리를 좁혔다.

"근데 우리 과속인 거 알지?"
"알지, 알지."
"용서 하는 대신 몇년 간 애는 꿈도 꾸지,"

입술이 순간적으로 백현에게 먹혀 들어갔다. 하려던 말은 입안에 나동그라진 채 끝내 상대방에게 속삭이지도 못한 채 삼켜졌다. 피맛이 아릿하게 타고 들어 왔다.

갓댐...  용서 라는 말이 이렇게 달콤한 줄 몰랐다. 역시 말은 안 해도 경수는 날 사랑하고 있는 거야! 이거면 충분 했다. 솜사탕이 떠 다니듯 뭉게뭉게해진 기분이 들어 이 세상이 다 밝아 보였다. 환각일까, 착각일까. 모두 아니길 바란다. 문득 입술을 부비적 거리자니 경수와의 첫키스가 실루엣으로 지나가면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그에 산통이 깨졌는지 입술을 먼저 뗀 것은 경수 였다.

"뭐."
"첫키스 때가 생각 나서."

장소는 사무실이었고, 청승 맞지만 과연 도경수의 인내심 한계란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에 홀로 남겨 야근 하던 게 계기 였다. 당시 낯은 좀 가려도 사리분별 확실하고 일처리 똑부러지던 경수가 알파고 2호가 아닐까... 하는 속설 까지 돌고 있었다. 물론 도경수라는 작자가 로봇이 아니란 건 백현만이 인증 받은 셈이지.

"나중에 돼서 그 땐 진심이었다느니, 이런 헛소리 지껄이면 죽인다."
"......"
"집에나 들어 가자. 춥다."

냅다 자켓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뒤 매정하게 등을 보이며 걷는 경수를 잠깐 응시하다 호다닥 따라 붙었다.

"이제 이런 거 안 하면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면 돼?"

경수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그걸 따라 잡으려면 경보걸음으로 겨우 따라 잡아야만 했다. 유일하게 남편인 '나'만 시도 해 볼 수 있는 경수와 같은 속도로 걷는 방법은, 바로 어깨동무다. 팔을 걸치자 대꾸 없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걸친 쪽 손을 잡아 온다. 온기가 닿아 오자 하염 없이 나오는 완연한 미소를 숨기기 힘들었다. 흐흥, 자꾸만 뜨거운 콧김이 새어 나왔다. 경수의 마음을 엿본 것만 같았다.

"외출을 좀 줄여 볼게."
"정말?"
"대신에 엄마 한테 전화 좀 자주 줘. 변서방 연락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단다."
"아, 어머님 또 아기 얘기 하시려고 그러나."
"뭐? 엄마가 애 이야길 했어? 언제?"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큭큭 거리며 얄밉게 웃는 백현의 명치를 가격 하려다 잽싸게 피하는 백현을 노려만 보다가 말았다. 입사 한지 겨우 1년차에다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시즌도 시즌인지라 일이 쌓이고 쌓여 있었다. 헌데 이 중요한 순간에 2세 계획이라니 청천벽력이지. 내가 이 일 하려고 어떻게 이를 악 물고 기어 올라 왔는데. 경수는 그 사이 또 기분이 하이해졌는지 떠들 거리는 백현의 옆에서 그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광활한 바다! 금가루 같은 모래사장! 화창한 날씨 아래 연인과 물놀이도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까치놀도보는 것이 남녀노소 나이불문 모두가 기뻐 하는 로망이었다. 특히 섬이나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 였다. 멀뚱히 서서는 여권 속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던 경수의 팔을 원재가 툭툭 쳤다.

"네 남편 왜 저래?"
"냅둬. 사적인 해외 여행은 처음이라나 뭐라나."

오... 이제 남편으로 받아들인 거야? 원재가 빙글 거리자 경수는 눈을 한 번 쨌다가 시선을 내렸다. 결혼식 당시에도 웨딩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번도 웃은 적이 없던 목석 같은 경수가 결혼 한달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수식어를 듣자 마자 가장 먼저 반응 했다. 계획 부터 예산 까지 모두 팀원들의 준비한 새해 선물이었다.

"원래 싸우면서 돈독해지는 거야."
"너희 끼리 일 처리 하려면 애 좀 먹겠다."
"팀장 님 안 계신 게 더 수월해."

경수의 명치 펀치를 피한 원재가 베시시 웃었다. 여권 사진 속 이마가 훤히 드러난 달걀 같은 자신을 보다가 '네 남편 왜 저래?' 문득 이 말이 생각나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어 고개를 들어 백현을 좇는데 백현은 이미 코 앞 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 비행기 타야 돼."

자연스럽게 허리에 팔을 감아 오며 말 한다. 날도 날인 만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비 두기로 했다. 백현의 반대쪽 손엔 그 사이 소식을 듣고 누구 보다 빠르게 상경해 변서방의 손에 쥐어준 즙 상자가 들려 있었다. '쌍둥이, 쌍둥이! 파이팅!'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거리자 골이 울렸다. 한 곳에 모인 팀원들이 허리를 숙였다.

"안전한 신혼 여행 되십시오!"
"야... 야. 우리가 무슨 조직이냐."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가, 가. 선물 고맙다."

예! 기대 하겠습니다! 느긋하게 걷기 시작하자 경수가 물었다. 뭘 기대한다는 거지. 백현은 대답 했다.

"글쎄다."

백현은 지금에 충분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단지 '좋음'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현재진행형에 거듭난 현재가 지나치게 행복한 것이었다. 경수는 이 철딱서니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애 하나를 벌써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극단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인 제 성격 받아 주는 사람도 백현 뿐이었던 것이 매일 깊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작은 어절 하나에도 휘청이는 백현은 놀릴 맛도 있고 두고 보면 참 재미 있었다. 낯선 감각에 경수가 흠칫하자 백현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왜?"
"허리 주무르지 마. 여기 공항이야."
"알았어."

그러더니 어깨에 볼을 살며시 내려 놓는다. 걸으면 걷는 길 마다 푹신한 침대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의무적이었던 일로 부터 해이해져서 그런 것일까. 감정을 얘기한 그 순간 부터 날마다 급격히 좋아져만 가는 백현을 위해 지금 부터 라도 무얼 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천천히 노력할 요량은 있다.

오늘의 공항은 평소와 비교적 한산 했다.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경수를 생각해 보면 날 정말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우릴 축복하나 봐..."
"축복 좋아 하시네."
"새신부가 돼서 말 예쁘게 하셔야지. 누가 우릴 신혼부부로 보겠어. 교태는 나만 부리는 것 같아, 응?"
"근데 신혼부부 타령은 언제 까지 할 거냐?"
"것도 글쎄다."

경수가 싫은 소리를 내며 백현의 머리를 어깨에서 밀어내자 동그란 머리통이 더욱 깊숙히 파고 들어 온다.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어쩌면... 결혼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도 못 하면서 바다에 뛰어들진 않으니까.



-
+늦게 나마 라도 글 남겨 봅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특출나게 쓸 줄 아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이는 자체로도 만족감을 느껴요. 어디 까지나 자기 만족이고, 됴른과 백공 또는 백도를 애정 하시는 분들이 넓은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잘 할게요. 지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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