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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품에 안아

기도 冀圖 2017. 3. 25. 22:00
누구야.

말 했다. 밤 앞에 우뚝 선 처음 보는 그에게. 하지만 듣지 못한 듯 뒤돌지 않는 그 때문에 벽 뒤로 몸을 슬쩍 숨겼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것을 알지 못 하는 걸까.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누구냐니까.

막상 테라스를 바라 보고 서 있는 그는 태평해 보였다. 이 집은 내 집이었지만, 마치 자기 집인 마냥 주머니 안에 손 까지 꽂아 넣은 채 였다. 잠결에 일어나 나도 모르게 향하게 된 거실엔 웬 남자가 밖을 보며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겁 부터 났지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남자는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푸른 달빛 내리는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는 그 때문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귀신이 아닐까.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도둑이야?

질문을 바꿔 다시 한 번 물으니 스윽 뒤를 돈다. 어깨만 살짝 비틀어 나를 향해 고개를 트는데 목 뒤로 한기가 돌았다. 도둑이라기엔 행세가 너무도 멀끔했다. 애초에 집주인은 저 남자인 것 처럼, 그냥 그렇게 보였다. 그 만큼 편안한 차림에 매우 차분해 보였다. 주춤하며 몸을 더욱 숨기곤 고개를 빼꼼 내민 상태로 남자를 바라 보며 말라 가는 침 때문에 애먼 혀를 굴렸다.

......

남자는 말이 없었지만, 멀찌감치서도 미약하게 오른 얇은 입꼬리가 보였다. 그 언저리로 투명한 물 줄기가 빠르게 흘러 내린다. 우는 건가. 왜 우는 걸까. 길을 따라 올라 우울에 빠진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대로 무언가로 부터 긴급하게 쫓기다 싶이 뛰어 남자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곤 달려 들었다. 주위의 사물은 상관없이 뛰어드는 순간 그 무엇도 날 아프게 할 수 없단 생각을 했다.

역시나 였다. 여전하게 난 내 하루를 그로만 채우고 있는 채 또 환영을 보고 말아 버린 것이었다. 맨바닥에 쓸려 벌게진 무릎을 꿇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하염없이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 했다. 그가 죽은지 석달. 하루가 다르게 미쳐 간다.






백도 품에 안아
/기도 씀






'경수야.'

"경수야?"

'... 도경수.'

"도경수."

민석이 손바닥을 눈 앞에 내보이자 그제서야 동공에 초점이 돌아 온다. 어, 어어... 하며 무슨 얘기 중이었지? 라며 대화의 흐름을 끊고 만 경수를 보며 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오늘만 멍 때리는 게 몇 번째야. 이만 하자."
"미안해. 오늘 새벽에도 봐 버렸거든. 환영."
"미안할 건 없고. 일찍 가서 쉬어."

가방 안으로 노트북을 집어 넣으며 말한 민석이 남은 커피를 빨대로 모두 빨아 마셨다. 잔을 흔들어 얼음이 부닥치는 소리를 내며 말 했다. 늘 그렇듯 환영만 봤다 하면 하루종일 기진맥진해지는 경수를 안쓰러운 눈치로 쳐다 보았다.

"나 아는 애 중에 심리학과 있는데 소개 시켜 줄까?"
"말 같은 소리를 해."
"야매긴 해도 괜찮을 거야."
"괜한 오지랖인 건 알아? 게다가 학생 한테 무슨..."
"자취방도 구하고 있댔어. 월세도 아끼고, 윈윈 아냐?"

윈윈이라는 말에 살짝 홀렸던 것 같다. 상영관 한 중앙에 홀로 앉아 스크린을 바라 보는 것 처럼 눈 앞에 생생했던 그 모습이 아른 거리자 머리가 띵- 하고 울려 왔다. 요즘 월세가 좀 비싼 게 아니니까, 어쩌면 괜찮을지도...

너무 그리운 마음에 내가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매일 우리 집을 찾아 오는 그의 영혼일 수도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토록 시달리는 데엔 어떠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난 너 미쳤다고 생각 안 해."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민석의 목소릴 들으며 경수가 물을 들이켰다.

"걔랑 이야기도 자주 해 가면서 해결해 봐. 혼자 사는 게 외로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 준면이 그만 봐야지."

그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자 경수가 그닥 춥지 않은 카페 안인데도 둘러매고 있던 머플러를 더 죄었다. 영원히 불변할 계절 처럼 언제나고 옆에 있을 줄로만 알았지. 물을 또 벌컥벌컥 들이붓듯이 마셨다. 난 이럴 때 정말 불안해. 있던 게 없다는 사실이 느껴지면 너무 불안해. 아직도 '그'라고 부르고 있는 나와 달리 이만 현실을 받아들인 주변 자체도 난 불안하고 두렵다. 나 까지도 그의 죽음을 수용할까 봐.



*



... 결국 저질렀다.

"먼저 샤워 할게."

어, 어... 대충 얼버무려 주었다. 대신 장을 봐 와 준 덕분에 집에서 쉴 수 있었다.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샤워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보곤 경수가 식탁 위에 찬거리를 늘어 놓다 말고, 말 했다.

"저기."
"어?"
"이름이 뭐라고 했지."
"... 변백현."

고개를 주억여 주자 백현은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간혹 우리집에 놀러 와 제 집 처럼 샤워하고 밥 먹고 웬만한 것은 다 하고 갔던 그 하고 겹쳐져 보였다. 그 보다는 키가 조금 더 컸고, 그 보다는 더 순하게 생겼다. 야채를 분류해 내면서 그만 손에 힘이 빠져 버려 더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단 기분이 사라져 버렸다.

억울 했다.

사랑했던 임을 교통사고로 떠나 보냈는데, 그의 숨결이 닿을 곳은 아무 데도 없는데, 나는? 나는 왜 이리 아파야 하지? 그 이유가 만약 내가 그를 무척이나 그리워 해서 라고 하자. 막상 이렇게 논제를 세워 놓으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종잇장 올려 놓은 듯,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온 몸에 힘을 뺀 채 앉은 경수가 한숨을 쉬었다.

없는 사람을 두고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룸메이트 사흘차인 백현에게 옛다 하고 마음을 열기에도 힘이 들었다. 감정의 무게 만큼 입을 열면서 얼마나 또 왈칵 차 오를지 알기 때문이었다. 원인 모를 열병 처럼 석달간 앓고, 또 앓았다. 다시는 흔들리지 말아야지. 보아도 모른 체 해야지. 하다가도 새벽에 불쑥 나와 한 남자를 보게 되면 모두 잊은 채 '누구지'라는 생각 부터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는 항상, 그 였다. 알면서도 속는 뻔한 클리셰.

'네 입으로 말 하라고 일부러 네 사정 얘기 안 했어.'

민석은 나 보고 뭘 어쩌라고 이 지경 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를 보고 달려 갔다 하면, 발견하게 되는 것은 푸르른 달빛 아래 엎어져 우는 나 뿐인데. 식탁 위로 엎드렸다. 팔에 닿은 이마가 열이 올라 있었다. 그렇게 5분 즈음에 지났을까, 바로 옆에서 부스륵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무래도 샤워를 마치고 나온 백현이 경수를 대신해서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 하였다. 허리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가 도우려 하자 백현이 저지 했다.

"볼 빨개. 소파에서 쉬던가 해."

아프냐는 물음도 없이 일방적으로 쉬라고 말한 백현이 묵묵히 냉장고 안으로 반찬통들을 집어 넣었다. 원래 내가 하기로 했던 건데. 좀 미안하지만 걸음 내딛기 우울할 정도로 컨디션이 하락 했기 때문에 경수는 별 말 없이 터벅터벅 걸어 소파로 향했고, 그런 경수를 뒤에서 백현이 유심히 지켜 보았다.



*



그는 모자를 모으는 걸 참 좋아 했다. 베레모, 볼캡, 페도라 할 것 없이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그런 그의 집엔 한 방을 꽉 매울 정도의 모자들이 있었고 그의 집에 들렀다 하면 항상 사람들은 모자를 하나 둘 피팅해 보곤 했다. 여느날 물었었다.

'불편하지 않아?'
'뭐가?'
'남들이 모자 손 대는 거.'

그 물음에 그는 웃음을 지어 보였고, 이내 나에게 그 중 하날 씌워주었다. 그러면서 정작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그 땐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제 와서 보니 너무 궁금했다. 무언가를 아끼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믿을 만한 구석 하나 없는 괴짜 같은 모습도 있었고,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사상을 가진 현세대 신사 같은 모습도 있었지만 그 중 나를 사랑해 주는 그의 모습이 가장 좋았다.

법학과를 다니던 그는 변호사를 꿈 꿨다. 그와 딱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 했다. 수트를 입고 법원으로 출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 느릿하게 걸으며 거실로 향했다. 이불도 걷어내지 않고 나와 바닥에 한참을 끌려 다니다 널부러진 이불을 두고 계속 걸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실 또 그를 만나러 가는 길임을 인지 하고 있는 듯 했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리석게도 너무 보고 싶었다.

이내 거실이 드러나고, 벽 앞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자 얇아 보이는 하얀 스웨터에 슬랙스를 입은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볼캡을 쓰고 있었다.

누구야.

경수가 말 했다. 남자는 미동이 없다. 늘 그랬지만 경수는 정신이 나간 사람 처럼 행동 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해 해이해진 사람 같이 히죽 웃으려는 모습이 미묘하게 광적이었다. 항상 거실의 커튼은 활짝 걷어져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리 쳐 놓은 듯이 오늘은 달빛이 전체 테라스의 반절 밖에 들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보름달의 그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는 남자는 여전 했다.

누구냐니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항상 '누구지'하는 두려움에 벽 뒤로 숨기 바빴지만 1초 라도 빨리 거실을 가르고 남자에게 가고 싶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만 하고 볼캡을 쓴 남자에게 달려 들려던 경수의 손목을 누군가가 강하게 잡아챈 채 벽 뒤로 잡아 당겼다. 시야 안에서 거실과 남자가 슬로우모션 처럼 사라지는데, 서서히 이 쪽으로 고갤 돌리는 남자를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품에 꽉 안겼다. 의도치 않게 낯선 체향을 들이마셨다. 빠져 나가지도 못 하게 양팔을 움켜쥔 채 오르락 내리락이는 가슴으로 부터 심장 소리를 들려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백현이었다. 백현은 벽 앞 거실로 부터 무언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듯이 고개가 그 쪽으로 훽 향해 있었다.

벽에 등을 딱 붙인 백현의 품에서 심장 소리와 숨 소리를 듣다가 서서히 눈이 감기며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다.



*



"얘기 좀 해."

외출 하려는 백현을 말로 붙잡은 퀭한 눈의 경수가 아직 온기가 돌아 따뜻한 잔을 어루만졌다.

"이제 와서 얘기 하자면 어떡해."
"시간 내."
"학교 가는 거야."
"얘기 안 하면 오늘 안 나가."

백현과 그닥 친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 흡연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접점이 없는 것도 맞았다. 제 사정을 말할 틈을 찾는 것도 경수에겐 힘든 것 중 하나 였다. 백현은 순순히 가방을 옆 의자에 내려 놓으며 경수의 건너편에 앉았다. 속사정을 몰라도 경수가 무언가로 부터 괴로워 한다는 것은 백현도 알고 있었다. 그 이유에 이 집에 낑겨 살게 됐으니까. 무엇이 문제냐고 먼저 묻지는 않았다. 경수는 하려던 말이 있기야 한데 입이 열리지 않아 답답해 했다. 하지만 백현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 어쩌면 강의에 지각 할지도 모르는데 지긋이 경수를 쳐다봐 주는 눈빛이 가벼웠다.

눈을 뜨니, 자신의 방이었고 침대 위 였다. 새벽에 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 어떻게 말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무슨 일인데."
"새벽에 말이야."
"새벽에 뭐?"

황당한 일을 경수가 지어냈다는 듯 정말 모른다는 표정의 백현이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상황, 마치 취조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난 범죄자, 변백현은 형사.

"새벽, 기억 안 나?"
"보일러가 세서 땀 좀 흘린 것 빼곤, 뭐 없는데."
"아."

알았어. 가 봐. 머쩍게 웃은 경수를 두고 백현이 의자를 뒤로 밀어 일어나더니 가방을 매며 거실을 지나 신발장으로 향한다. 주방에서 신발장은 보이지 않는다. 차로 부터 피어 오르는 연기를 주시 했다. 모락모락, 잘도 피어 오른다. 난 미친 사람 처럼 웃으며 그에게 향하려 했고 그런 날 억압하듯이 품에 가둔 백현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매일 이어지는 그 상황이 꿈이 아니란 것 즈음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백현은 그 어떤 확신도 주지 않은 채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섰다.



*



꿈과 현실. 그 중간에 자리한 수면. 물결 위로 떠 올라 물 속으로 빨려 들어 가려는 나. 그리고 웬 변백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꿈이라고 생각 안 해. 그가 날 당기려는 기운 보다 더 억셌어."

민석이 말린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숨을 쉬었다. 매번 경수의 고민 상담자로서의 구실을 하기도 제법 피곤할 법 한데 흔쾌히 나와 주는 민석에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캠퍼스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이니까. 째즈 음악이 흐르는 호프집 안은 시끌벅적 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은 경수가 민석과 눈을 마주쳤다.

"뭐라고 설명하기도 힘들어. 그저 내 꿈일 수도 있으니까."
"의존 하려는 마음이 꿈으로 나온 거 아니야?"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변백현이 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가족 중에 무당 있고 그런 게 아닐까."
"너 지금 환영이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라도 생각 안 하면,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이잖아... 경수가 우물 거리며 말 했다. 줄곧 준면과 경수를 옆에서 쭈욱 지켜 봐 왔던 민석도 자꾸만 함부로 이 얘길 꺼내는 게 미안 했다. 붉은 조명 아래서 민석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기다려 봐."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더니 키패드를 막 두드린다. 그 모습을 별 생각이 없이 보던 경수가 속에서 부터 숨을 끌어와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이 시간 즈음이면 백현이 집에 들어 갔을 시간이다. 뒷목을 긁적였다. 그 때, '안녕'하며 부스 안으로 들어선 것은 바로 변백현이었다. 뒷목에서 손을 떼지도 못한 채 경수가 넋 나간 낯을 보이자 민석이 말 했다.

"근처라길래 불렀어."
"근처?"

경수가 되묻자 백현이 경수의 옆자리에 앉으며 대꾸 했다.

"잠깐 어디 들렀다가 지나는 길이었어."

뭐 어쩌자고 들른 거야. 경수가 얼음이 되어서 계속 뒷목에 손을 올리고 있자, 무의식적으로 백현이 뒷목을 쳐다 보았고 순간 눈가가 찡그려지는 게 보였다.

"... 뒷목 만지지 마."

잔이 하나 더 오고 민석이 백현의 잔을 채워 주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대화해 보라, 이건가. 아. 하며 손을 내린 경수가 반댓손으로 손등을 쓰다듬었다.

"왜?"
"아니야. 어쨌든 할 얘기 있다며, 뭔데."

얘는 바로 본론 부터 나가네. 민석이 웃으며 건배를 권했고 셋이서 잔을 부딪쳤다. 백현은 줄곧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는데 외출할 때도 이런 편한 옷만 입는 모양이었다. 모자를 좋아한 그 처럼, 같은 맥락인 건가. 잔의 반절을 비우자 민석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입은 백현이 먼저 열었다.

"민석이도 알아?"

잔을 입에 가까이 대고 있지만 닿고 있진 않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 팔을 기댄 채 물어 오는 백현은 경수를 쳐다 보고 있지 않았다. 더이상 술이 채워져 있지 않은 잔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어떤 거...?"
"네 집에 있는 남자. 나도 걔가 누군진 알거든."

그 말에 민석이 물고 있던 오징어를 허벅지 위로 떨구었다. 알고 있었구나. 경수의 손가락 끝이 미약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 간단한 대화를 원할 뿐이야 나는."

테이블 위로 두 팔을 올려 팔짱을 끼며 경수를 바라 본다. 이 소란 속에서도 백현의 음성만은 뚜렷하게 귓가에 들려 왔다.

"... 알고 있어. 처음 부터 끝 까지."
"제대로 알고 있진 않겠지. 너도 그럴 테고."
"낮엔 모른다고 했잖아."
"말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이었거든. 듣고 난 후에 안 그래도 정신력 약한 네가 충격을 받으면 곤란하니까. 우선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해 줬으면 좋겠어."

백현은 진지 했다. 그 모습이 꼭 전문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술술 말 했던 것 같다. 실마리가 궁금 했던 건 민석도 마찬가지 였기 때문에 허리 까지 기울인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유심히 들었다.

"보게 된지는 한달 정도 됐어. 하지만 볼 때 마다 그 라는 걸 잊어 버려. 그리고 그가 뒤를 돌고 얼굴을 보게 되면 난 미친 사람 처럼 달려 들어. 이게 끝이야..."

백현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안녕이라는 걸 잔인한 인사로 받아 들이는 경수로서 매일 밤 나타났다가 한 줌의 모래 처럼 사라지는 김준면이라는 작자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 할게."

비장한 어투에 민석과 경수 둘 다 숨을 죽인 채 들었다.

"그는 죽은 사람의 넋이 맞아. 네가 정체를 모르는 것은 최면이라고 보면 돼. 그리움을 자극하기 위해서지."
"귀신... 이라는 소린가?"

민석이 묻자 백현이 마지못해 끄덕이며 경수의 눈치를 보았다. 별 동요 없이 무미건조한 눈빛을 하며 '계속 해'라고 말 한다. 더이상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어젯밤에 무슨 달이 떴는지 기억해?"

'하지만 누군가가 미리 쳐 놓은 듯이 오늘은 달빛이 전체 테라스의 반절 밖에 들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보름달의 그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는 남자는 여전 했다.' 아! 라고 탄식한 경수가 말 했다.

"보름달."
"... 맞아. 보름달이 뜨면 북쪽에서 귀문鬼門이 열려. 이승의 귀신들이 질서를 지으며 그 문으로 들어가는 날이 보름이야. 석달이면 그는 이미 문으로 들어갈 기회를 세번이나 놓친 게 돼. 기회를 버리고 네 주위를 맴도는 이유가 뭐인 것 같아?"
"데려... 가려고."

민석이 저도 모르게 말 하자 경수의 쥐어진 주먹이 육안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였다. 그 주먹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준 백현이 어떠한 주문을 달달 외우는 입모양이 보였다. 해괴한 한자가 난무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 몸이 서늘해져서는 민석이 두 팔을 힘껏 문질렀다. 술집에서 이게 뭐 하는 거야...

"산 사람인 네가 그 문으로 들어가면 넌 시체도 없이 죽은 자가 되는 거야. 우선 김... 그가 눈치 채지 못 하게 네 방 부터 그 벽 뒤 까지 결계를 쳐 놓았어. 네가 먼저 나서지 않는 한 당분간 해를 입을 일은 없을 거야."
"... 너는 어떻게 알았어?"
"처음 집에 들어서면서 부터 거실 바깥쪽에서 찝찝한 기운이 흐르더라."

따뜻한 손이 차디찬 손이 말아쥔 주먹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왠지 모르게 아까 보단 가슴이 안정 돼 있는 것을 느꼈다. 예상대로 변백현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더 말하면 네가 버거워할 테니 나중에 할게. 그리고 내가 이 상황을 목격한 이상, 네가 그 넋에게 이끌리지 않도록 할 거야."

어찌 말도 없이 떠났냐는 말도 쏙 들어간다. 이 순간 까지도 백현도 그를 볼 수 있다면 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고 멍청한 같은 생각을 해 버렸다.



*



벌써 저질러 버린 김에 이젠 어쩔까 싶기도 했다. 아무 이익도 없이 기를 쓰자 하니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강의 서적을 챙기다 말고 백현이 한숨을 푹 푹 쉬었다.

'네가 그 넋에게 이끌리지 않도록 할 거야.'

으름장을 놓기야 했지만 귀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대신의 댓가가 필요 했다. 경수 라는 애는 그저 아픈 인물이고 난 도와 준다 했을 뿐이지만, 그 후로 쉽게 기력을 보충하지 못할 내 모습이 당연 했다. 짐을 모두 챙긴 백현이 제일 빠르게 강의실을 나섰다. 복도를 거닐며 자켓의 자크를 끌어 올렸다. 인상만 보아 하면 딱 체대생 타입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딱히 운동하지 않아도 잘만 붙는 근육에, 트레이닝복만 고집하는 차림새. 그렇게 생각할 법 하다.

태어나기 전 부터 아버지는 박수무당이셨다. 그 쓰잘데기 없는 능력 역시 물려 받은 것도 나고. 그리고 몇년 전 까진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오랜만에 동생 생각이 나자 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건물을 나서며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았다.

난 이미 내 인생 편안히 살 수 없단 걸 알고 있다. 아직 신을 받진 않았어도 곧 그러하리란 것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 처럼 평범 했다면, 그렇담 어땠을까. 어떠긴, 다르겠지. 이렇게 태어나 버린 김에 이렇게 살다 죽지 뭐.

단 한 번, 박수무당의 아들로 태어난 게 정말 혐오스러웠을 때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귀문에 대한 아픔이 생겼었다. 주위 한 번 둘러 보지 않고 앞을 향해서만 줄 지어 걷는 귀신 무리에 저도 모르게 발을 들인 여동생을 잡지도, 뭣도 하지 못한 채 새벽에 지나고 해가 떴을 때. 그 때의 고통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북적한 곳을 갈 수가 없다. 행여나 이 사람들이 숨이 붙어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잔뜩 모인 본관 앞을 고개를 푹 숙인 채 지나갔다.

나는 왜 귀신을 보는 눈으로 태어나 그들을 보았을까. 여동생의 손을 살며시 잡은 채 줄로 끌어 당기는 어머니의 낯을 왜... 모른 체 하지 못 하게 세상에 잉태 되었나.

귀문이라면 이젠 넌덜머리가 나지만 귀문으로 인한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학교에서 5분 거리인 집으로 발을 들이고 현관문을 열면서 부터 또, 죽은 자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



노트북의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는 소리만이 가득 했다. 과제가 한창 중인지라 안경을 쓴 채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자 그냥 들어선 경수가 주스가 담긴 잔을 책상 위로 올려 놓았다.

"아 고마워."
"저기, 실례가 아니면 오늘은 네 방에서 자면 안 될까."

아직은 귀신이라는 존재에 낯섬을 느낄 경수를 이해 한다.

"뭐... 그래. 대신 나 밤샘 과제 해야 하니까 조용히 해야 돼."
"당연히 조용히 해야지."

신나서는 방을 나서는 경수의 뒷모습을 좇았다. 뒷목에 새겨진 각인. 갈 때 까지 갔네, 이제. 고개를 양쪽으로 틀며 스트레칭한 백현이 서적을 뒤적 거렸다. 몇쪽이더라, 몇쪽. 페이지를 찾으며 생각해 보았다. 저 정도로 각인인 새겨진 거라면 다음 보름엔 완전히 매료될 것이란 예고와 다름 없었다. 골치 아프다. 과제 폭탄 맞은 와중에 보름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니. 지난 일주일간 경수는 또 새벽에 거실로 나갔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백현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보통 짬밥 있는 귀신들은 아우라의 향만 맡고도 송곳니를 세우니까.

안경을 벗곤 눈을 지긋이 누르다 만 백현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곧 통화음이 잠깐 나더니 한 남성의 굵직한 음성이 들려 온다.

-안부 인사가 늦다.
"죄송해요. 학업 때문에 틈이 없었어요."
-변명 하지 마.
"네......"

어깨에 휴대폰을 뉘어 귀를 대고 통화하며 작성 중이던 걸 마저 작성 했다. 또 다시 키보드를 마구 두들기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 축귀부랑 금귀부 좀 보내 주실 수 있으세요?"



*



"... 마!"

단발마의 외침에 정신을 확 차리자 잡힌 곳도 없는데 뒤로 훅 몸이 치우쳐지면서 전 처럼 누군가의 가슴팍에 어깨를 부딪쳤다.

"잘 했어. 다음 부턴 더 빨리 정신 차려야 해."

마지막 기억은 건너편의 등을 돌리고 노트북을 보며 과제를 하는 백현이었고 난 이불 속에 누워 휴대폰을 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잠에 들었는데, 또 그에게 향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백현이 날 붙잡은 것을 보니. 경수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고 있는 백현이 오른손을 뻗어 정면을 엄호 했다. 동시에 정면을 바라 보았고... 경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백현 덕에 무너지지 않았다. 사실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할 것을 예상 했다.

그가 결계 바로 앞 까지 와 있으니까.

"허... 허어..."

경수가 숨을 들이키는 소릴 내며 불과 3m 간격 앞의 그를 보았다. 큰 눈이 동그래지며 똑바로 말을 구사해 내지 못 했다. 빛을 등지고 있기에 그림자진 얼굴과 그의 몸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스미는 곳의 끝자락에 서서는 벽 때문에 빛이 닿지 못해 캄캄한 곳에 있는 경수와 백현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얀 스웨터와 슬랙스. 그리고 오늘은 쓰여 있지 않은 볼캡. 옷은 그가 사고 당시 입고 있던 옷인 게 떠 오르며 피칠갑이 되어 트레이에 누운 모습이 스치면서 경수가 턱을 어쩌지도 못한 채 눈물을 머금어 갔다.

"넌 여기로 들어 올 수 없어. 이만 하고 돌아 가. 이 자는 네게 향하는 걸 원치 않다."

잔뜩 찌푸려진 눈썹 사이가 보였다. 사실 귀신을 이렇게 가까이서 대치 하는 것은 백현도 처음이었다. 한 판 붙을 만한 물건도 없고 부적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오늘은 싸울 무기가 입 외엔 없다. 악취가 없는 것을 보니 아직 악귀가 되기엔 이른 것 같았다. 그저 도경수를 앗아 가려는 단순한 의도가 끝인걸까.

학교에서 어쩌다 한 번 본 적이 있던 얼굴인 듯 싶었다. 이마를 덮은 생머리가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나풀 거린다.

"퇴마사로서 명령 했다. 불복종은 소멸의 의미로 받아 들이겠다."

순간 훅- 하고 거센 바람이 들어 와 앞머리가 홀라당 뒤로 까질 정도로 치고 들어 와선, 그가 몸의 방향을 틀어 원래 자리 쪽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 가는 것이 보였다. 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경수가 이내 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채 홀로 서럽게 울어 제끼자 어쩔 수 없이 여전히 한 팔로 안은 채로 어깨를 약하게 주물러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자신을 데리러 매일밤 찾아 온다. 기분이 어떨까. 백현이 생각 했다.

... 난 그 날 이후로 여동생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귀문으로 들어 갔으니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할 테지. 경수의 뒷통수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깜빡였다. 그리곤 뒷목을 손으로 덮은 채 귀의 흔적을 제거 하는 주문을 마음 속으로 외웠다. 백현의 인생은 복불복이었다. 신을 받을지, 받지 않을지. 받을지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 하지만 능력만 물려 받은 채 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받게 된다면 난 내 꿈도 포기한 채로 인생을 바쳐야겠지.

그는 화가 나 보였다. 바람을 쏘았던 모양새가 괘씸해 보였으니까. 평소 처럼 도중에 잠에 드는 것 없이 경수의 울음은 출렁이다 못해 넘칠 정도로 더욱 거세져만 갔다. 그는 이렇게나 사랑 받고 있었구나.



*



'부적은 뭣 하게.'
'그냥요.'
'괜히 주위에 얽매이지 마라. 네 명을 갉아 먹는 짓이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잔에서 입을 떼며 손등으로 입가에 흘린 물을 닦았다. 경수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멍 하니 보는 중이었다. 또 다시 돌아 올 보름에 안정을 취하기는 개뿔 얼마 전 코 앞에서 대면하게 된 그 때문에 심신이 더 불안정해졌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때 마침 택배가 와 있었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상자의 테이프를 찌익 떼어 내었다. 시선은 흘끗 흘끗 경수를 자꾸 의식 했다. 그 날 이후로 경수는 줄곧 백현의 방에서 잠을 자곤 하였다. 그럴 만도 하겠지. 느껴 본 적 없던 또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상자를 열자 어깨가 다 무거워지는 기운을 가진 종잇장들이 보였다.

하. 백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대강 눈치는 채신 듯 넉넉하게 별의 별 부적을 넣어 주셨다. 게다가 서적 까지. 직접적으로 퇴마를 배우거나 익힌 적은 없었다. 전부 다 어깨 너머로 터득한 것이었다. 신기 했고, 그런 걸 하면 특별해 보였으니까.

이 정도면 이번 보름 땐 그로부터 경수를 분리 시킬 수 있겠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담담해진다. 식탁 의자를 끌어 앉아 턱을 괴었다. 다만 괜찮지 않은 걸로 부터 '괜찮아'라고 말 하기 까지의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왜 대체 그 때 가만히 있었는가, 에 대한 의문점은 날이 갈 수록 줄어 들었다. 이런들 동생이 살아 오거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닌 이유 였다. 때론 죄책감도 받아 들여야 한다.



*



누군가가 집에 있을 때에는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 백현은 이미 그의 존재를 알고 결계로 위장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극구무인하고 오겠다는 민석을 만류한 경수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백현에게 말 했다.

"만약에, 그 하고 대화 할 수도 있어?"
"그런 걸 왜 물어?"

오늘이 보름이라 예민한 것은 백현도 마찬가지 였다. 별별 이상한 요괴도 다 봐 온 그에게도 이런 날은 그닥 달갑지 않았다.

"만약에."
"가능하기야 하지. 다만 득 되는 건 없을 거야."

주방으로 향한 백현이 머그컵에 물을 따르더니 단 숨에 마셔 버린다. 그리곤 거실로 들어 와 소파에 앉는다. 경수는 건조하게 말 했다.

"피곤하게 해서 미안."
"내가 자처한 거야."
"... 고맙게 생각 할게."

엉덩이를 조금 더 빼며 팔로 눈을 가려 버린다. 벌써 부터 피곤한 듯해 보였다. 백현이 숨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 나 한텐 희언이라는 동생이 있었어. 늦둥이었는데, 정말 예뻤지."
"늦둥이 라니, 귀여워 했겠다. 난 외동이야."

동생을 여의었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 이야길 하고 싶었다. 아버지를 제외 하곤 밖에서 처음 해 보는 이야기 였다.

"아기 땐 입술이 꼭 젤리 같았어."
"뽀뽀 한 번 받아 보고 싶다."
"그건 안 돼."

경수가 옅게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릴 들은 백현도 피식 웃었다. 밤은 다가 오고, 힘은 없었지만 유난히 웃고 싶은 오후 였다. 두 눈이 마주쳤다. 먼저 얘길 꺼냈지만 더이상 입을 열고 싶지 않아졌다. 경수도 언뜻 보았겠지, 깊은 어둠에 들어찬 불거진 눈시울을.



*



쿵, 소리에 두 눈에 뜨였다. 젠장... 졸아 버린 것 같았다. 쿵 소린 뭐지 싶어서 고개를 처들어 의자에서 일어나니 침대 위에 경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문이 닫힌 소리인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며 문을 열어 제낀 백현이 복도 끝 벽을 도는 경수를 발견 했다. 안 돼, 안 돼. 졸아 버린 게 문제 였다. 애초에 내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 백현의 기에 눌려 그가 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살짝 풀어 놓은 결계를 느끼곤 들어 온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내달린 백현이 코너를 돌자 손을 뻗은 그와 잡으려는 경수가 있었다.

"도경수, 정신 차려. 바짝 차려야 돼."

섣부르게 다가 갈 수 없어 걸으며 단호하게 말을 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앞을 향해 걸음만을 내딛고 있는 경수와 그의 등 뒤 테라스 밖으로 줄을 지어 골목을 활보 하는 수많은 죽은 자들의 무리들이 보였다. 순간 주춤 했다. 앞으로 발을 내딛기가 두려웠다.

"도경수."
"......"
"도경수!"

이미 완전하게 최면을 걸어 버린 듯 경수는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백현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활짝 열린 테라스 문으로 부터 옅게 바람이 새 들어와 커튼이 팔락였고, 하늘에 박힌 둥근 달이 훤하게 빛났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두 눈을 꾸욱 감은 채 심호흡을 한 백현이 오른다리에 체중을 실었다가 앞으로 튕기며 그 반동으로 달렸다. 것을 알아챈 준면이 벌써 앞 까지 다가온 경수의 손을 턱 잡았고, 지지 않게 반댓손을 백현이 움켜 쥐었다. 의도치 않게 가운데서 이리 당겨지고 저리 당겨지게 된 경수의 두 눈엔 초점이 없었다.

저 멀리선 귀문이 열려 있을 테고, 닫히기 전 그는 경수를 데려 가려고 할 것이다.

"경수야. 나 왔어. 백현이 여기 있어."

죽은 자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점점 골목 쪽으로 이끌려만 가는 경수를 당기려고 백현이 안간힘을 썼다. 주머니, 주머니에 있는 부적을 당겨야 하는데 한 팔을 놓았다가는 경수 자체를 놓칠 것 같았다. 귀 무리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 역한 광경에 백현이 울먹이기 시작 했다.

"도경수, 경수야. 정신 좀 제발,"
"사랑한다고 했어."
"......"
"방금, 사랑한다고 말 했어..."

집안을 향해서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져 온다. 백현을 떼어 내려고 저만의 무력을 행사 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 속 준면은 무표정으로 흔들림 하나 없었고, 수마 속에서 기가 빨려 버거워 하는 것은 백현 혼자 였다.

"저 자식 지금 개수작 부리는 거야."
"......"
"내 말 잘 들어. 쟤 같이 혼자 예고도 없이 덜컥 죽어 버리면 외로워서 데려 가려는 거 라고!"

백현이 악다구니를 썼다. 팔에 무자비하게 핏대가 섰다. 죽은 자와 대적 하는 패기 부터가 백현이 누군가를 지켜 내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럼 나는! 네가 느꼈던 아픔 똑같이 느낄 나는!"
"......"

무리로 거의 이끌려 가는 경수의 고개가 스윽, 하고 백현 쪽으로 돌아 가면서 백현의 두 눈에서 부터 눈물이 볼을 타고 후두둑 떨어졌다. 눈 까지 접어 씨익 웃으며 말 한다.

"... 가지 마."

그 때문이었을까, 경수 마저도 눈가가 불거지면서 오롯이 그 의지 하나로 육체가 백현의 쪽으로 서서히 당겨지고 있었다. 무표정 했던 준면의 얼굴에 균열이 일기 시작 했다. 잠깐 괴리가 생긴 순간 백현이 오른쪽 주머니에서 축귀부를 꺼내고 모든 기를 동원하여 경수를 훅 당겨 집안으로 던져 넣었다. 경수를 던지면서 앞으로 나아간 백현의 앞머리가 바람으로 인해 벌어지며, 오른손에 쥐어진 축귀부를 준면의 가슴팍에 붙이자 서로 강하게 거부하듯 튕겨나가졌다.

무리를 향해 떨어져 나간 준면의 주위로 싱크홀이 나듯 바람과 함께 무리에 큰 구멍이 생겼고, 허공으로 부터 튕겨져 집안으로 들어선 백현이 테라스 문을 잽싸게 닫아 유리창 위로 금귀부를 붙였다.

"흐어억... 허억..."

거친 숨을 허덕이며 무릎을 꿇은 백현이 유리창 위로 손바닥을 기대며 밖을 보자, 그 무엇도 있지 않았다. 끝났다. 정신을 차리곤 달려 와 백현을 이리 저리 살피는 경수의 허벅지에 이마를 기댄 채 백현이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귀문을 나와 몇백년을 몇천년을 떠 돌며 죽은 자를 데려 가는 그 무리 사이에서 희언을 보았다.

잇새로 피가 흘러 나왔다. 힘차게 들썩 거리는 어깨 아래 심장이 신생아의 것 처럼 빠르게 뛰었다. 경수의 티셔츠 자락을 움켜쥔 주먹이 새하얗게 질려 가고, 낯빛이 허여멀건해질 때 즈음 백현이 희미했던 정신 조차 결국 잃었다.



*



아픔으로 인해 아픔을 얻었다. 그 날, 호흡 장애를 겪은 이후 몇날며칠을 병원에서 요양을 해야만 했고 원인을 모르겠단 말로 급성 머시기 거시기 하는 의사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원인이야 뭐... 알 사람만 알고 있음 됐지.

"그래서 쟤가 말이지..."
"아 아버지."
"자는 거 아니었냐?"

허리를 일으키는 백현이 과일을 깎던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백현의 아버지는 간이 침대에 앉아 팔자 좋게 사과를 아삭아삭 씹으며 백현의 어릴 적 이야길 하던 중이었다. 경수가 얍실하게 웃으며 말 했다.

"중구 오줌싸개."
"진짜 저걸 왜 말 해요?"

어허허. 웃으시며 사과를 건네 주시는데 그걸 또 받아서 먹는다. 백현의 아버지는 박수무당이라는 무섭지 않을까, 싶은 직업을 가진 분이셨지만 반대로 굉장히 유쾌한 분이셨다. 자색 계량한복을 입곤 경수의 울음 소리 가득한 응급실에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저 놈 내 저럴 줄 알았지'라고 하셨으니까...

"백현아 내일 퇴원 해도 된대."

회복력은 좀 더뎠지만, 백현의 아버지와 즐거운 시간도 보내 보고 그닥 나쁘지 않은 부자인 듯 싶었다.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한시름 편해졌다. 매일 자기 전 했던 기도가 닿은 것 같아서. 꼭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공도 없잖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땐... 정말 멋있었다. '가지 마'. 귓가에 그 목소리가 들려 오자 또 히죽 웃으며 입안에 사과를 집어 넣었다. 귓바퀴가 붉어져 왔다.

"야 변백현!!! 아... 안녕하십니까."

민석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는 호들갑을 떨며 문을 확 밀고 들어 왔다가 백현의 아버지를 보곤 곧바로 조신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게 또 재밌어서 낄낄 거리고 웃는 백현을 보고 있자니 나도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즐거운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와 보라 손짓하며 민석을 놀려 먹는 아버님도, 무사한 백현도, 갑자기 불시에 나타난 민석도. 전부.

네 품이 나를 살렸기에 후에 숨이 바래져 죽더라도, 네 품 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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